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라고 불립니다. 과거에는 단순히 안타, 홈런, 방어율 등 기본적인 수치만을 중심으로 평가가 이뤄졌다면, 오늘날의 야구는 복잡한 데이터 분석을 통해 경기 운영과 선수 평가의 수준이 한층 정교해졌습니다. 이 글에서는 야구에 데이터를 적용하는 흐름과 변화, KBO와 MLB의 접근 차이, 그리고 데이터가 만들어내는 새로운 전술 패턴까지 함께 알아봅니다.
기록의 스포츠, 데이터로 진화하다
야구는 스포츠 중에서도 기록이 가장 중요한 종목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타자의 타율, 투수의 ERA, 수비수의 실책 수 등 기본적인 수치는 오래전부터 선수 평가의 기준이 되어왔습니다. 하지만 기술의 발전과 함께 이러한 데이터는 더 이상 단순한 통계로 머물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OPS(출루율+장타율), WAR(대체 선수 대비 승리 기여도), WHIP(이닝당 출루 허용률)과 같은 정교한 수치들이 선수의 가치를 설명하는 데 활용되고 있으며, 이는 선수 영입, 연봉 책정, 트레이드 판단 등에 중요한 요소로 작용합니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타율이 높은 타자가 무조건 좋은 타자로 인식되었지만, 현재는 OPS나 wRC+(조정 득점 창출력)와 같은 고급 지표를 통해 ‘실제로 얼마나 효율적인 공격을 했는지’를 따져보는 방식이 보편화되었습니다. 또한 수비 지표도 진화했습니다. UZR(수비 범위 평가), DRS(수비 기여도) 등을 통해 눈으로 보기 어려운 수비력을 수치로 분석하게 되었고, 이는 수비형 내야수나 외야수의 가치 재평가로 이어졌습니다. 이처럼 ‘기록의 스포츠’였던 야구는 이제 ‘분석의 스포츠’로까지 진화하고 있으며, 이는 팬의 시청 방식도 함께 바꾸고 있습니다. 단순한 결과가 아닌 ‘과정과 기여’를 이해하는 데이터 기반 응원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KBO와 MLB의 데이터 활용 차이
데이터 활용 측면에서 KBO와 MLB는 아직 큰 격차가 존재합니다. MLB는 2000년대 초반부터 ‘머니볼’이라는 개념을 통해 본격적으로 데이터 기반 전략을 도입했고, 지금은 Statcast 시스템을 기반으로 모든 투구, 타구, 주루를 실시간으로 기록하고 분석하고 있습니다. Statcast는 투구의 회전수, 타구의 발사각, 수비수의 반응 시간까지 초단위로 측정하며, 이를 기반으로 선수들의 기량을 보다 과학적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반면, KBO는 2010년대 중반부터 KBO 자체 시스템(KBO-TMS)을 통해 데이터 수집을 시작했지만, 장비 인프라나 인력 구성, 활용 전략에서 아직은 MLB 수준에 미치지 못합니다. 각 구단마다 데이터 전담팀이 구성되어 있긴 하나, 예산과 분석 시스템, 해석 능력의 차이로 인해 실제 전략 반영에는 한계가 있다는 평가가 많습니다. 또한 MLB는 팀뿐만 아니라 선수 개인, 에이전트, 미디어, 팬까지 데이터 활용이 활발한 반면, KBO는 아직 구단 중심으로만 데이터를 사용하는 구조이며, 팬들을 위한 분석 콘텐츠는 제한적인 편입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KBO도 트래킹 시스템 도입, 야구 전문 데이터 회사와의 협업 등을 통해 변화를 꾀하고 있으며, 각 팀들도 전력분석팀의 역할을 확대하며 현장에 실질적인 데이터를 적용하는 사례가 점차 늘고 있습니다.
데이터가 만들어내는 전술의 변화
데이터는 단지 수치를 제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 경기 운영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수비 시프트’입니다. 특정 타자의 타구 성향에 따라 내야수의 위치를 조정하여 수비 효율을 극대화하는 전략으로, MLB에서는 경기의 흐름을 바꿀 정도로 큰 변수로 작용합니다. 또한 투수 운영에서도 데이터가 핵심 기준이 되고 있습니다. 투수의 이닝당 피안타율, 타자 상대 전적, 피로 누적도 등을 바탕으로 투수 교체 타이밍이 결정되고, 이는 과거보다 훨씬 더 세밀한 불펜 운영으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타자 라인업 구성도 데이터 기반으로 진화하고 있습니다. 출루율이 높은 타자를 1번, 득점 생산성이 높은 타자를 중심타선에 배치하는 것은 기본이고, 경기 상황이나 상대 투수 유형에 따라 ‘맞춤형 타순’이 설정되기도 합니다. 데이터는 선수 개인에게도 훈련 방향을 제시합니다. 타격 시 발사각 조절, 투구 시 회전수 향상, 주루 시 스타트 반응 시간 단축 등은 모두 데이터를 통해 측정되고 피드백되는 영역입니다. 실제로 데이터 기반 훈련을 통해 부진했던 선수가 반등하거나, 신인이 빠르게 성장하는 사례가 점점 늘고 있습니다. 궁극적으로 데이터는 감독의 ‘감’이 아닌, 과학적인 의사결정을 가능하게 하며, 이는 팬들에게도 야구를 더 깊고 전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야구와 데이터의 만남은 단순한 기술 접목이 아닌, 야구 문화를 바꾸는 진화의 시작입니다. 선수의 가치, 감독의 전략, 팬의 응원 방식까지 모두 데이터를 통해 더 정교하고 입체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KBO 리그도 이러한 변화에 발맞춰, 더 많은 정보 공개와 데이터 기반 콘텐츠 확대를 통해 팬과의 접점을 넓혀가야 합니다. 이제 야구는 숫자와 함께 뛰는 스포츠입니다.